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우구스트 3세 (문단 편집) ===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 === 1733년 폴란드-리투아니아 국왕이었던 아버지가 사망하자, 아우구스트 3세는 작센 선제후 직위를 물려받아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가 된 후 자신이 폴란드-리투아니아 국왕으로 선출되어 한다고 주장했고, [[러시아 제국]]과 합스부르크 제국의 지지를 받았다. 그러나 [[대북방전쟁]] 당시 [[스웨덴 제국|스웨덴]]의 지원을 받아 아우구스트 2세를 축출하고 폴란드 왕위에 올랐다가 스웨덴이 패한 뒤 [[프랑스 왕국]]으로 망명을 떠났던 [[스타니스와프 1세 레슈친스키|스타니스와프 레슈친스키]]가 사위 [[루이 15세]]의 지원을 받아 폴란드-리투아니아의 국왕으로 즉위했다. 이에 프랑스 왕국+'''폴란드 연합'''(스타니스와프 1세)과 '''작센'''(아우구스트 3세)+[[합스부르크 제국]]+[[러시아 제국]] 동맹 간의 갈등이 폭발하면서 '''[[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]]'''이 벌어졌다. 2년간의 치열한 전쟁을 치른 양 세력은 1735년 10월 3일 [[그레이트브리튼 왕국|영국]]과 [[네덜란드 공화국|네덜란드]]의 중재를 받아들여 잠정적으로 전쟁을 중단한 뒤 1738년 [[빈(오스트리아)|빈]]에서 평화 협약을 체결했다. 스타니스와프 레슈친스키는 폴란드 왕위를 포기하고 [[로렌 공국]]을 영지로 받았고, 아우구스트 3세는 폴란드-리투아니아 국왕으로 [[대관식]]을 치렀다. 그러나 아우구스트 3세는 정작 전쟁까지 치르면서 얻어낸 폴란드-리투아니아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드레스덴에서 사냥, 오페라, 미술품 수집에 열을 올릴 뿐 정치 자체에 손을 뗐다.[* 귀족들 천국인 폴란드-리투아니아의 난잡한 정치판에 학을 떼서라는 설이 있지만, 이 인간은 애초에 통치에 손을 놓고 사치와 향락에 빠져 살았던 인간이다. 본국인 작센도 통치에 거의 손을 놓은 사람이 폴란드-리투아니아라고 뭐 얼마나 관심이 있었을지.] 그는 30년 동안의 폴란드 통치 기간 중 불과 3년 미만을 폴란드-리투아니아에서 보냈고 폴란드 유력 가문들간의 정쟁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를 수습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. 그는 폴란드-리투아니아 관리의 총체적인 책임을 총신인 하인리히 폰 브륄(Heinrich von Brühl 1700~1763)에게 위임했고 브륄이 폴란드-리투아니아에서 난정을 일삼는 걸 방치했다. 이 때문에 폴란드-리투아니아는 갈수록 쇠락해졌고 훗날 [[폴란드 분할]]을 당하는 신세로 전락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